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공동체가 되자
우리는 우리의 신앙성장 을 위해서 머무르고, 듣고, 질문하고 마음에 새기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눅2:41-52) 살다보면 어떤 때는 성경의 내용이 환희 깨닭져서 기쁘고 벅찰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 해도 마음에 새겨 두면 그때 깨닫지 못했던 것이 나중 어느시점에 홀연히 깨달아져서 더 큰 은혜가 올 때가 있다는 [...]
우리는 우리의 신앙성장 을 위해서 머무르고, 듣고, 질문하고 마음에 새기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눅2:41-52) 살다보면 어떤 때는 성경의 내용이 환희 깨닭져서 기쁘고 벅찰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 해도 마음에 새겨 두면 그때 깨닫지 못했던 것이 나중 어느시점에 홀연히 깨달아져서 더 큰 은혜가 올 때가 있다는 [...]
예수님의 성전 3일간의 행동의 초점은 머무시고 들으시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눅2:41-51) 우리는 성령 안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성령이 계신 곳이 성전입니다. 머물면서 성령의 바람을 쐬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바람 앞에서 무거움, 어려움들이 서서히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햇볕을 쐬야 합니다. 성령의 햇볕을 쐬고 있노라면 마음의 어두운 곰팡이 녹슨 [...]
예수님은 첫 번째 비유에서 "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 (마13:44) 라고 하나님 나라를 보화에 연결시킵니다. 두 번째 비유에서는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마13:45 새번역) 라고 말씀 하시며 사람과 연결시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대상(객체) 이면서 주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가복음 15장 비유의 주인공은 아버지 입니다. 아들들은 아버지와의 깨어진 관계를 나타내고 아버지는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들을 끌어 안습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무신론과 가나안 성도가 팽배한 오늘날의 현실에서 둘째아들이 한국교회에서 큰 아들의 모습을 봅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옆에 있다고 착각하는 큰 아들에게도 아버지를 [...]
수 세기 동안 탕자의 비유는 ‘복음중의 복음 (Evangelium in Evangelio) 으로 불려져 왔습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는, 하나님은 죄인들을 마지못해서 용서하시는 분이 아니라 죄인들을 용서해 주려는 열망이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하신 분임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의 자리로 나아오려고 마음먹는 순간 이미 용서해 주기로 [...]
우리는 항상 이웃을 규정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비유를 통해 이웃은 만들어져 가는 역동적 관계이지 이웃이 누구라고 규정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는냐 ? ”(눅10:36절) 라고 말씀하시며 남이 너에게 이웃이 되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네가 먼저 남에게 [...]
말라버린 무화과처럼 너무나 부끄러운 한국교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들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하시면서까지도 회복 하기를 원하셨던 주님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분별력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서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혜를 성령님께 구해야 합니다. 초기 교회는 [...]
기독교에서 말하는 “ 선함과 아름다움 ” 은 관계의 개념 입니다.(시133:1) 서로가 연합하고 동거 할 수 있는 성숙한 상태, 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가 선함과 아름다움 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사람에게 쓰여진 유일한 경우는 초대교회의 바나바입니다. (행11;24) 바나바의 인격 속에 나타난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특징 중 [...]
세상에는 우리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육체적인 쾌락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잃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는 붉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를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사탄은 영원을 팔아 순간의 쾌락을 사라고 우리를 부추킵니다. [...]
칼빈이 강조한 장로교회 경제 신학의 기초는 청지기 의식입니다 청지기는 내가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따라 재물을 선하게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재물은 악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청지기인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의 실천과 목표는 " 절제와 나눔 " 입니다. 무엇보다 청지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