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 에게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설명 하셨습니다. (눅12:24-29)

잘 알려진 까마귀와 백합화 이야기입니다.
까마귀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기르십니다.
까마귀보다 귀한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호하실지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인간들도 딱 한 번은 이렇게 의식주의 문제를 벗어나
새처럼, 백합화 처럼 산적이 있습니다.
에덴동산 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에덴에서 죄를 짓고 쫓겨나 평생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며
살게 됩니다.

회개 하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 난 죄 지은 것 없습니다 ’ 하고 버팁니다.
하지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는 자체가 바로 죄이며,
이것이 바로 내가 죄인 이라는 증거입니다.
실낙원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단순히 영혼이 건짐을 받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의식주의 문제를 벗어난 참된 부요함 으로의 시작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의 근심과 걱정을 넘어선 참된 부요자 로서의
신앙적 행위는 무엇입니까?
물질 즉 헌금 입니다.

헌금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듯
우리의 부요와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는 우리의 증명 입니다.

헌금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십일조 헌금 입니다.
저는 한숲 교인들이 비교적 헌금 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온전한 십일조에서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께 부요한 자로서의 상징으로 온전한 십일조의 결심과
십일조를 드리는 한숲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 김동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