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코마 와의 한 주간이 지났습니다.
이들의 섬김과 한숲의 이들을 향한 섬김이 하나님 나라의 정서를 우리에게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 정서는 감사와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인도와 그분의 성취하심은그 어떤 것으로도 제한하거나 상상 할 수 없는 것임을 압니다.
하나님은 이 팀들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너무나 섬세히 그리고 부드럽게 한숲 이라는 공동체를 만지셨습니다.
카탈리스트 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촉매입니다.
촉매를 전공한 형제가 말해 주었습니다.
촉매의 역할은 반응하는 에너지의 벽이 있는데 에너지를 낮추어주는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촉매의 역할로 영적인 벽을 넘은 이들이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2.
무엇보다 감사는 그들이 떠나고 맞은 부활의 주일 이었습니다.
당일 한숲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선포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한 모든 시간이 감사했지만 당일 우리의 관심은 다른 것에 잊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께 맞추어 졌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공동체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우리는 단편적인 것에 마음이 쏠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당일 이 모든 것의 인도와 섭리는 우리 주님의 섬세한 계획하심에 있음과
모든 일들의 현상을 너머 우리 주님을 높여 드리는 고백을 우리 공동체가 할 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3.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남아공에서 9년6개월 동안 구약을 전공하신 귀한 선배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한숲을 알고 한숲을 아끼십니다.
목사님께서 마지막 논문을 마무리 할 즈음 지도하시는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했습니다.
‘ 김! 만약 자네가 논문을 쓰다가 혹은 설교를 준비하다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깨닭음 이나
혹은 놀라운 관점, 인사이트가 생기거든 즉시 그 모든 것을 멈추고 엎드려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2천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았던 것을 지금 너에게만 말씀 하실 리가 없어 ! ‘
이번 팀들과 성경에 관하여, 말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들이 성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이 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매번 확인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이들이나 저 역시 성경에서 말씀 하시는 것 외에 그 어떤 특별함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몇 몇 형제들이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들도 귀하지만 나 역시 그들처럼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사모한다고.
그렇습니다.
기도라는 것 역시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능력을 갖는 다는 것이 특별한
영적 능력을 소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는 이들처럼 하나님과 자연스럽게 대화 하는 것입니다.
4.
금요일 이들과의 마지막 집회를 참석하지 못한 분들은 간증 소식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번 기간을 지나는 동안 한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경애 자매의 눈을 뜨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자매는 지난 6개월 동안 시력은 살아있으나 눈을 뜨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력 마저도 점점 나빠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병원에서도 병명을 찾지 못했고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의 입장은 현재의 상황은 어려우며 현대 의학으로는 눈을 뜬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목요일 저녁 한숲의 사역자들과 타코마 팀 그리고 선교사님 가정과
함께 시작된 기도는 새벽녘에 이르렀고 마침내 자매가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감격했고 기뻐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5.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를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 자매의 눈뜸이 한숲이 영적으로 눈을 뜨게 되는 축복의 시간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하나의 샘플로 우리에게 이 일은 이제 계속하여 일어날 것이라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숲이 하나님 나라를 볼 것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이들이 떠나고 월요일 새벽 말씀을 준비하며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 본문에서 지난 한 주간 동안 주님께서 한숲을 향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듣게 됩니다.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막16:7절)
무덤에서 만난 청년은 여인들에게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뵈올것이다 이야기 했습니다.
여기서 ” 보다 ” 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옵세스데)
이는 일차적으로는 육체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볼 것이라는 의미이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회복된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이해 하게 될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에서 이 ” 옵세스데 ” 라는 단어는 ” 제자들의 영적 소경 ” 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사용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의 약속의 의미는 단순한 재회나 상봉이 아니라
” 보게 됨 ” 으로의 축복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보게 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새롭게 되고, 선교적 사명을 회복하게 됩니다.
‘ 너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막16:15)
말씀앞에서 소름이 끼칩니다.
주님은 한숲에게 보게 될 것을 말씀 하십니다.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6.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말은 …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도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6장의 새벽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발견합니다.
첫째는 <두려움> 이요 둘째는 <완악함> 이라 말씀 하십니다.
한숲이 눈을 떠 하나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를 ‘ 영적 전쟁 ’ 이라 부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눈이 가리워져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이제 우리에게 그것을 ‘ 분별 ’ 하게 될 것이라 말씀 하십니다.
새벽 본문 말씀은 빌립보서 입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 지극히 선한 것의 분별 ” (빌1:10) 의 비결을
” 사랑의 풍성함 ” (빌1:9) 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사랑이 풍부해질 때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그 사물의 본질 을 보게 하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로 난 영적 전쟁이란 단어 앞에 오히려
사랑이 한숲에 풍성해 지겠구나 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7.
그렇다면 한숲이 보게 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일까요?
그 눈 뜸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 가운데 직접 일하시고 계시는 성령님에 대한 감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섬김을 통해 온 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어지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는 <거룩과 성결>로 더욱 더 분명해 지는 나라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회개와 용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를 향한 오리지날 디자인을 알게 되었다면
단순히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제부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결단과 책임>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삶에 대하여는
이제부터는 날마다 회개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계속 하여 볼 수 있는 비결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성령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용서입니다.
거룩과 성결을 가로 막는 가장 큰 벽은 용서입니다.
가장 큰 관계의 연속 역시 <용서>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벽 마저도 넘게 될 것입니다.
8.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걷어지는 순간에는<전쟁> 이기에 기적과 치유와 능력과 기사들이 일어납니다.
회개와 용서와 사랑이라는 가치가 드러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선명하게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주일을 지나고 다가 올 주일을 준비하며 주님께 우리 공동체를 향한
다음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계2장의 서머나 교회를 말씀 하시며
한숲에 ‘ 충성 ’ 이라는 단어를 주셨습니다.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2:9)
서대경 선교사님께서 페이스 북에
부활절 메시지를 전하며 <결단>을 이야기 하고 계심을 읽었습니다.
한숲은 이제 <결단>을 너머 <충성> 으로 나아 갑니다.
9.
우리를 향한 오리지날 디자인은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며
이들처럼 기도를 통해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축복하고 세워주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고전14:3)
이것은 이제 한숲의 기도가 달라지길 원하시는 것을 뜻하며 우리가 이웃과 민족과 열방을 향한 축복의 기도로 나아감을 말합니다.
축복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크고 섬세하신 성령님의 인도 가운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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