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막6:48)

1.
여기서 ” 지나가려고 하셨다 ” 는 말은 헬라어 원전에서 ” 에델렌” 으로 ” 작정했다 ” 는 뜻이다.
즉 예수께서 지나가시려고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왜 예수는 제자들이 탄 배로 곧 바로 들어오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가려고 작정하셨을까?

” 지나가는 행위 ” 는 하나님의 나타나심, 임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초월성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보고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타나실 경우 ,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을 비스듬히 슬쩍 보게끔 하나님이 지나가셨다
( 출33:19,33:22,34:6, 왕상19;11)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 듯 같은 방법으로 지나가려고 하심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전형적인 임재를 직접 몸으로 수행하려 하셨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을 구해 주기에 앞서 지나치기로 작정하신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는 삼위 일체의 한 위로 존재하시는 분임을 제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2.
그러나 주 예수는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그 행사를 끝내 하시지 못한다.
제자들이 공포에 질려 유령이 나타났다고 소리 지르는 통에 판이 깨지고 만다.(49)

예수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장면을 볼 수 있는
너무나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제자들은 공포에 사로 잡혀 그 특권을 날려 버리고 만다.
사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려움을 주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한다.

3.
지금까지 한숲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은 그 영광을 가시적으로 드러 내고 계신다.
지금까지 하셨던 모든 말씀이 로고스에서 레마로 바뀌는 시점이다.
말씀이 육신을 입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지나가시게 할 때> 만이  볼 수 있다.
두려워서 도망가거나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예수님을 붙잡아 두려는 순간 그 영광을 볼 수가 없다.

그 영광은 지나가게 하실 때에 드러난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한숲의 사역은 예수님이 < 지나가시게 하는 > 사역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지나가시도록 자신의 몸을 내어 드렸다.
예수님이 마음 껏 지나가시도록 길을 내어 드려야 한다.

그래서 난 목회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매일 매일 주시는 말씀을 따라 최선을 다해
<지나가시도록> 길을 내어 드릴 뿐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사역이다.
그때부터 주님이 직접 사역하시고
그 때에 주의 영광이 드러난다.

한숲은 주의 영광을 볼 것이다.